창세기는 시작에 관한 책이자 성경 전체의 서론이면서 구속사의 청사진을 제시하는 책입니다. 창세기의 핵심인 '족보'는 단순히 한 세대의 낳고 죽었던 명단을 나열한 것이 아니고 성경 전체를 관통하는 하나님의 놀라운 구원 섭리를 담고 있습니다.
모세는 40년 광야 생활을 지나 가나안 입성을 눈앞에 두고 “옛날을 기억하라! 역대의 연대를 생각하라!"는 고별 설교를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남긴다. '옛날'과 '역대의 연대'는 호랑이 담배 피던 '옛날이야기'가 아니다. 아담 타락 이후 애타는 심정으로 인간 역사에 끊임없이 개입하면서 뜨거운 사랑을 베풀어 오신 하나님의 섭리의 기록이다. 그 섭리에 따라 불굴의 의지로 경건한 길을 지켜간 믿음의 조상들의 이야기다. 광야에서 가나안을 바라보는 이스라엘 백성들이 '옛날'을 기억해야 했듯이, 오늘날 광야 교회에서 신령한 가나안, 천국을 바라보며 살아가는 성도들에게도 '옛날'은 되새기고 배워야 할 메시지다.
'낳고, 낳고'가 반복돼 지루하게만 느껴졌던 창세기의 족보는 바로 그런 '옛날', '역대의 연대'를 핵심적으로 압축한 기록이다. 인간과 전 우주를 회복시키려는 하나님의 구속(救贖) 경륜이 고스란히 담겨 있는 역사다. 창세기의 족보는 2,300년의 긴 세월에 걸친 구속 섭리를 단 몇 줄의 기록에 담아내고 있다.
그러니 한 줄 한 줄을, 이름 하나 하나를 깊이 음미해야 한다. 조선왕조 5백년을 가장 짧게 줄인다면 '태정태세문단세··'로 시작되는 왕들의 이름 스물일곱 글자일 것이다. '세종'이라는 한 단어 안에 그의 성격과 업적과 시대상이 다 담겨 있는 것이다. 창세기의 족보도 마찬가지다. 이 책은 아담부터 아브라함까지 20대의 조상들의 이름과 성경 기록을 통해 한 사람 한 사람에 숨어 있는 영적 의미를 재발견하게 한다.
창세기는 가인, 함, 이스마엘, 에서 등 경건한 족보의 본류에서 이탈한 죄악의 족보도 빠짐없이 기록하고 있다. 왜그럴까. 그들의 족보는 바로 오늘날 나의 불신과 죄악을 그대로 비추는 거울이기 때문이다. 우리 앞에는 두 개의 길이 모두 열려 있다. 그래서 족보는 끊임없는 '분리'의 역사다. 아픔을 무릅쓰고 죄악을 부단히 분리해 내는 과정이 개인적, 역사적으로 함께 이뤄져 온 것이다. 그런 개인적, 역사적 '분리'의 전형(典型)이 되는 인물이 아브라함이다. 이 책의 주인공을 꼽는다면 아브라함이다. 바로 그에게서 마태복음에 기록된 예수님의 족보가 시작되는 것이다.
• 아담과 라멕은 56년, 노아와 아브라함은 58년간 동시대에 살았다
• 노아 방주를 지은 기간은 120년이 아닌 70-80년이다
• 인류 최장수 므두셀라가 죽은 해, 홍수가 일어났다
• 아브라함은 데라가 죽은 뒤 갈대아 우르를 떠났나?
이런 자세로 족보를 자세히 살펴보면 깜짝 놀랄 일들이 발견된다. 뜬 구름 잡는 것 같던 '옛날'이 생생한 스토리로 되살아나 오늘날 '나의 이야기'로 꿈틀거린다.
만화같이 느껴지던 아담 이후 조상들의 수명이 단 1년의 오차도 없이 들어맞는 것을 발견하게 된다. 930세를 향수한 아담과, 777세를 향수한 아담의 9대손 라멕(노아의 아버지)는 56년간 동시대를 살았다. 950세까지 산 노아는 11대손 아브라함과 58년 동시대를 살았다. 모두가 기독교 역사상 처음으로 밝혀진 사실들이다.
국내외를 막론하고 신학자, 목회자들이 '120년'이라고 가르쳐 온 노아 방주 건축 기간. 그러나 성경을 자세히 살펴보면 방주 건축 기간은 100년에 미치지 못한다. 하나님이 노아에게 방주를 지으라는 명령을 하신 때(창세기 6:14)는 노아가 세 아들을 낳은(창세기 6:10) 뒤의 일이다. 하나님은 "네 아들들과 며느리들까지 방주에 함께 들어가라"고 명령하셨다(창세기 6:18). 노아는500세가 지나서 셈과 함과 야벳을 낳았고(창세기 5:32) 홍수가 일어난 것은 노아 600세의 일이다(창세기 7:6,11). 간단명료하게 떨어지는 계산이지만 놀랍게도 이 역시 기독교 역사상 처음 논증된 사실이다. 그게 왜 중요하냐고? 마지막 때는 노아 때와 같고, 오늘날 성도는 모두 방주를 지어가는 사람들이기 때문이다.
성경에 기록된 최장수(969세) 인물 므두셀라, 그의 손자 노아 때 홍수가 일어나 세상은 심판을 받는다. 그런데 이들의 연대를 따져 보면 므두셀라가 죽은 바로 그 해, 노아 홍수가 일어난 것을 알 수 있다. 므두셀라는 홍수에 휩쓸려 죽었을까. 아니다. '므두셀라'의 원어의 뜻은 '그가 죽으면 세상에 심판이 온다'이다. 그가 969세라는 인류 최장수를 기록한 배경에는 끝까지 심판을 미루고 회개를 기다리신 하나님의 안타까운 심정과 긍휼이 담겨 있다.
아브라함은 하나님의 명령에 따라 처음엔 갈대아 우르를 떠났고, 두 번째로 하란을 떠나 가나안으로 이주했다. 사도행전 7장 4절에는 “아브라함이 아비 데라가 죽은 후에 하란을 떠났다"고 기록돼 있다. 그러나 연대를 맞춰 보면 아브라함이 하란을 떠날 때 75세였고 데라는 145세였다. 데라는 60년이나 하란에서 더 머무른 뒤 205세에 죽었다. 성경 기록의 오류일까. 그렇지 않다. 이 스토리에는 아브라함의 '분리'와 '결단'의 역사가 담겨 있다.
끊임없이 죄악과 욕심을 분리해 낸 믿음의 조상들을 통해 창세기의 족보는 이어져 왔다. 그 족보는 '전세계의 구원을 위한 아브라함의 등장'을 알리는 구속사의 여명에 해당한다. 아브라함을 택하심으로 다시 시작된 구속사의 행진은 아브라함의 자손으로 오시는 메시야를 통해 성취되고야 만다. 그 웅대하고 경건한 스토리가 바로 '옛날'이고, 실상 그것은 '옛날'이 아니라 오늘날! 지금! 바로 나의 이야기인 것이다.
신선한 충격과 놀라움을 금치 못했습니다. 내용의 깊이가 상상을 초월한 것이었기 때문입니다. 국내외적으로 창세기의 족보에 대하여 연구한 책이 많이 있지만 이 책은 이 분야에서 아주 독보적인 책이라고 여겨집니다. 날이 갈수록 어둠의 먹구름이 짙어 가는 때에 이렇게 귀한 내용을 담은 책이 세상에 빛을 보게 된 것은 한국 교회 전체에게 너무도 다행스러운 일이며 하나님의 크신 축복입니다.
이 책을 읽어보니 저자가 얼마나 하나님 중심, 말씀 중심, 은혜 중심인지를 알 수 있었습니다. 이 책이 중국에서 발간돼야 중국 기독교가 말씀에 바로 선다고 생각하고 이 책을 중국어판으로 발간하기 위해 간절히 기도하고 백방으로 노력했습니다. 그 결과 놀랍게도 이 책이 중국 공산당 정부로부터 출판 허가를 받게 됐습니다. 이 저서를 통해 바른 성경신학이 중국에 들어가고 모든 중국인들 위에 하나님의 놀라운 크신 역사가 일어나게 되기를 소원합니다.
이 책은 오직 성경 말씀으로 가득 채워져 있습니다. 저자가 얼마나 성경을 사랑하고 있는지, 그리고 저자가 성경 연구라는 샘에서 얼마나 깊은 생명수를 마시고 있는지 알려줍니다. 이 책은 창세기 내용의 역사성을 엄숙하게 인정하고 있습니다. 많은 현대 신학자들이 창세기 내용의 역사성을 부인하고 있는 이때에, 저자가 성경의 역사성을 확실하게 증언하고 있는 것은 너무도 통쾌한 일입니다. 이 깊은 통찰력을 가진 저서가 많은 신학교와 대학교에서 읽혀지기를 진심으로 추천합니다.
저자의 연구는 지금껏 계에서 발상조차 못했던 것으로, 실로 혀를 차게 합니다. 이러한 저자의 연구 업적은 만일 수행되지 아니하였더라면 영원히 인류의 자랑스러운 문명의 보고(寶庫)에서 빠질 뻔하였습니다. 이제 우리는 이 저서를, 세계 아카데미아의 전당에 올릴 때가 되었다고 확신합니다.
50여 년 간 목회 활동을 하며 구약성서를 연구해 온 박윤식 전 대한예수교장로회 총회장이 펴낸 이 책은 아담에서 아브라함에 이르는 유대인 조상 20대의 족보를 샅샅이 분석해 흥미진진한 창세기의 세계를 드러낸다. 저자는 유대인 조상들 이름의 어원을 분석하고 그들이 살았던 연대, 윗세대와 아랫세대의 관계를 출생 연도와 수명 등을 근거로 재구성했다. 이 책의 출간은 기독교계에서도 화제다. 역사신학자인 민경배 연세대 명예교수는 '한국교회사에서 주목받아 마땅한 귀중한 업적'이라고 말했다.
족장들의 이름에 담긴 의미를 고대 히브리어 어원 등을 통해 고증하고 그들이 살았던 연대를 과학적으로 재구성한다. 그 결과 900년을 넘게 살았던 족장들의 수명이 결코 '허튼 숫자'가 아니라 인류와 중동의 역사를 함축하고 있음을 드러낸다. 기독교인이 아니더라도 기독교의 역사관과 세계관을 이해하는 데 많은 도움을 줄 수 있는 책이다.
단순히 낳고, 죽고 하는 연대기적 기록을 넘어 창세기의 족보로, 하나님의 구원섭리를 나타낸 책은 성경에서 문제를 찾고, 이를 성경으로 해석하는 방식을 취했다. 인류의 아담부터 고대 이스라엘과 중동의 조상 아브라함까지 숨겨졌던 족보의 의미를 성경 해석과 역사연구를 통해 밝혀냈다.
이 책은 보기 드물게 '성경에서 성경으로' 연구에 집중한 책이다. 그 결과 노아 방주 건조 기간이 120년이 아니라는 사실을 성경을 통해 명확히 입증해 주고 있고, 또한 아담이 자신의 9대손 라멕과 56년이나 동시대에 같이 살았다는 사실 등 성경연구에 몰입하지 않고서는 발견하기 어려운 새로운 통찰들이 가득한 책이다.
'족보'라는 생경한 분야를 축으로 하나님의 구속사의 핵심을 꿰뚫는 안목의 예리함에 감탄할 뿐 아니라, 성경에서 성경으로 이어지는 정통성과 그 주석의 풍부함은 한국교계에 단비를 제공해 주기에 충분하다. 아담부터 아브라함에 이르는 첫 20명의 인물들에 대한 상세한 강해는 하나하나가 명설교라 할 정도로 이 책의 백미에 해당한다.
가인과 셋 계열이라는 두 흐름을 통해 가인 계열이 어떻게 악의 편에서 하나님을 대적했는지 또 영적 흐름이 성경 역사 속에서 어떻게 전수되고 있는지 깊은 통찰로 해부해 놓았다. 성경에 집중하고 있는 저자의 성경 접근방식을 눈여겨 볼 수 있다.
이 책은 천국에 가려면 예수님을 믿으라고 설득하는 책은 아니다. "무서운 말세론적 심판보다는 오히려 주님의 영광스러운 재림으로 역사의 완성을 보는 은혜와 축복의 종말을 갈망과 감격으로 찬송하며 기다리게 하는" 책이다.
창세기는 인류의 조상 아담이 930세까지 살았다고 기록하고 있습니다. 그의 뒤를 이은 후손들도 900세를 넘는 수명을 누렸다고 기록돼 있습니다. 이런 장수에 대해 일부 기독교인들조차도 만화같은 일이라며 실제 역사로 믿으려 하지 않지요.
그러나 구속사 시리즈 1권 「창세기의 족보」저자는 창세기에 기록된 아담의 후손들의 연대를 모두 계산하고 대조해 봤습니다. 놀랍게도 단 1년의 오차도 없이 완벽하게 들어맞습니다.
이 연대에 따르면 아담은 자신의 9대손인 라멕과도 56년 동안 같은 시대를 살아갔습니다. 라멕은 방주를 만든 노아의 아버지입니다. 에덴동산에서 쫓겨난 뒤에도 이렇게 긴 세월을 살아간 아담, 그는 어떤 삶을 살아갔을까? 후회와 죄책감에 젖은 채로만 살았을까?
위와 마찬가지로 창세기의 족보를 계산해 보면 깜짝 놀랄만한 사실이 여럿 발견됩니다. 노아 홍수가 일어난 해는 그의 할아버지이자 인류 최장수인 969세를 누린 므두셀라가 죽은 바로 그 해였습니다. 그러면 므두셀라는 홍수에 휩쓸려 죽은 걸까? 아닙니다. 놀랍게도 그의 이름의 뜻은 '그가 죽으면 세상에 심판이 온다'입니다. 할아버지 므두셀라부터 손자 노아까지 이어지는 드라마틱한 스토리, 구속사 시리즈 1권 「창세기의 족보」에 모두 밝혀져 있습니다. 이미 창세기에 다 기록돼 있지만 누구도 밝히 끌어내지 못했던 이야기들입니다.
노아가 방주를 지은 기간을 계산하려면 노아의 첫 번째 아들인 '셈'이 언제 출생했는지를 아는 것이 첫 번째 열쇠이다. 하나님께서 노아에게 방주 지을 것을 명령한 것이 노아가 세 아들을 낳은 후이기 때문이다(창세기 6:10~). 창세기 5장 32절에서는 '노아가 오백 세 된 후에 셈과 함과 야벳을 낳았더라'고 증거하고 있다. 이 구절만 보면 노아가 500세 된 후에 세 아들을 낳았다는 것은 알 수 있지만, 정확한 셈의 출생 시점을 알려면 성경의 한 구절을 더 보아야 한다. 창세기 11장 10절을 보면 '셈의 후예는 이러하니라 셈은 일백세 곧 홍수 후 이년에 아르박삿을 낳았고'라고 증거하고 있다. 이 두 구절을 통해 셈의 출생 연도가 정확하게 나오는데, 홍수가 노아 600세에 일어났으므로 셈이 100세가 되는 해는 노아가 602세가 되는 해이다. 즉 셈은 노아의 나이 502세에 출생한 것이고, 홍수 심판이 일어나기 98년 전이다. 셈의 출생 연도만 보더라도 방주를 지은 기간은 100년이 채 못되는 것이다.
하나님께서 노아에게 처음 홍수 심판의 계획을 말씀하시고(창세기 6:13), 방주의 자세한 식양과 함께 방주 지을것을 명령하신 시점은 매우 중요하다. 창세기 6장 10절에서는 노아가 셈과 함과 야벳 세 아들을 낳은 후에 하나님께서 노아에게 방주 건축을 명령하신 것으로 나온다. 셈이 노아 502세에 출생했으므로, 만약 노아가 두 아들(함, 야벳)을 빠르게 연년생으로 낳았다 하더라도 2년은 더 걸렸을 것이고, 2년 간격으로 두 아들을 낳았다면 4년은 더 걸렸을 것이다. 그러므로 노아가 방주를 지은 연수는 노아 600세에 홍수 심판이 일어났기 때문에 최소 96년보다 더짧은 기간인 것이다.
창세기 6장 18절에서 하나님은 노아에게 방주 건축을 명하시면서 '그러나 너와는 내가 내 언약을 세우리니 너는 네 아들들과 네 아내와 네 자부(子婦)들과 함께 그 방주로 들어가고'라고 증거하고 있다. 다시 말해서 하나님께서 노아에게 방주를 지으라고 말씀하신 때(창세기 6:14)는, 노아가 500세 된 후에 낳은 자식들이 성장하여 장가간 후인 것이다. 노아의 세 아들이 결혼하여 아내를 얻으려면, 이들의 나이가 최소한 15세는 넘어야 한다. 이것을 고려해 보면 노아와 일곱 식구(노아의 아내, 세 아들, 세 자부)들이 방주를 건축한 기간이 70~80년은 넘지 않았을 것이다.
홍수 심판은 노아 600세 되던 해 2월 17일부터 시작된다(창세기 7:11). 노아와 그 가족들은 하나님으로부터 홍수 심판 7일 전에 방주로 들어가라는 명령과 함께 홍수 심판의 계시를 받게 된다(창세기 7:1~4). 방주가 하나님의 명하신 식양과 설계대로 완성되지 못했다면 홍수 심판을 견디지 못했을 것이므로, 방주가 완성된 날은 노아 600세 2월 10일 전인 것이다.
창세기 6장을 기술된 순서대로 다시 한 번 찬찬히 읽어보자. 창세기 6:3에서 '그들의 날이 일백이십년이 되리라'는 말씀은 지금까지 노아가 방주를 지은 기간으로 많은 주석과 창세기 강해집에서 주장되어 왔다. 여기에서 120년은 당시 육체주의로 타락한 세상에 대한 심판의 경고를 하신 시점인 것이고, 그때에 방주 계시를 곧바로 주신 것은 아니다. 방주를 지은 기간이 120년이라면, 홍수가 나기 120년 전은 노아가 480세가 되는데, 그때에는 장자 셈을 낳기 22년 전이므로 성경말씀과는 너무 불일치하는 것이다.
응애~ 응애~ 품에 안긴 사랑스런 갓난아기를 바라보는 에녹의 두 눈에는 긴장과 연민이 뒤섞인 복잡한 감정이 흐르고 있었다. 그의 나이 65세. 그는 아기의 이름을 '므두셀라' 라고 짓는다.
므두셀라. '그가 죽을 때 심판이 온다'라는 뜻··· 왜 그는 시랑하는 아들에게 이렇게 섬뜩한 이름을 지어준 것일까.
므두셀라가 태어날 무렵, 에녹은 하나님의 특별한 계시를 받는다. 대홍수의 심판, 세상의 끝날에 대한 계시였다. 거기엔 곧 태어날 아들의 운명도 포함돼 있었던 것으로 보인다. '그가 죽으면 세상에 심판이 온다'는 무시무시한 계시··· 내키지 않는 이름을 이들에게 지어줌과 동시에 에녹은 인생의 대전환을 맞는다. 그 때부터 그의 삶은 하나님과 온전히 동행(히브리 원어로 '자기 뜻을 하나님께 예속시켜 뒤를 따라간다' 는 뜻)하는 것이었다. 사랑하는 아들의 섬뜩한 이름을 부를 때마다 그는 몸서리치듯 심판의 메시지를 생각하며 죄에서 떠나 심판을 경고하는 삶(유다서 1:14-15)을 살 수밖에 없었다.
종말 이라는 이름으로 불리며 자라난 아이. 아버지 에녹의 경건한 삶을 지켜보며 자란 므두셀라는 187세 되던 해, 아들 라멕을 낳는다. 아버지 에녹이 252세 되던 해다. 에녹과 므두셀라, 라멕, 3대는 경건한 에녹의 교훈 속에 신앙의 가문을 이루어 간다.
므두셀라가 243세 되던 해, 충격적 사건이 일어난다. 8대조 할아버지인 아담의 죽음. 이미 에덴 동산에서 죄의 삯으로 사형 선고를 받은 아담이지만 죽음의 운명이 끝내 찾아오고야 만 것은 그의 나이 930세, 9대손 라멕이 56세 되던 해였다. 타락 전 아름다움으로 충일(充溢)했던 에덴동산, 그리고 여자의 후손을 통한 회복의 소망을 그로부터 들어왔을 후손들에게 아담의 죽음은 '사망' 이라는 인류의 숙명에 대한 비통한 실감이었다.
하나님과 동행하던 아버지 에녹이 365세 되던 해, 죽음을 맛보지 않고 하늘로 올라간다. '죄를 지은 인류는 죽음의 운명을 맞을 수밖에 없다'는 것을 몸으로 보여준 아담, 그리고 '하나님과 동행하면 죽음을 보지 않을 수 있다'는 것을 몸으로보여준 에녹. 이 엇갈린 운명을 목도하고 이 땅에 홀로 남겨진 므두셀라는 아버지가 자신에게 지어준 이름의 의미를 다시한번 생각할 수밖에 없었을 것이다.
이제 므두셀라도 할아버지가 됐다. 아들 라멕이 손자 노아를 낳은 것이다. '노아'의 뜻은 '위로자, 평안을 주는 자'. 이 땅에서 살아가는 고통과, 인간의 유약함을 절감한 라멕의 고뇌에 찬 호소가 담긴 이름이다.
긴 세월이 흘렀다. 7대조 할아버지 셋, 6대조 할아버지 에노스, 5대조 할아버지 게난, 증조부 마할랄렐, 할아버지 야렛이 차례로 하나님께 돌아갔다. 손자 노아에게서는 셈, 함, 야벳의 세 아들이 태어났다.
증조부 마할랄렐이 895세, 할아버지 야렛이 962세를 향수했으니 900세에 가까워진 므두셀라도 서서히 지나간 생애를 결산해야 할 때였다. 그러나 그는 선조들처럼 편안히 눈을 감을 수 없는 운명이었다. 아버지 에녹이 지어준 이름, 평생 자신의 삶을 지배해 온 하나님의 그 계시는 과연 어떻게 성취될 것인가. 갈수록 죄악이 관영(貫盈, 차고 넘침)해가는 세상을 지켜보면서 두려움과 긴장으로 보내야 하는 나날··· 그 때, 하나님이 손자 노아에게 방주를 지으라는 명령을 내린다.
조롱과 멸시 속에 방주를 짓는 손자 노아의 가족들. 직계 친척들마저 외면하고 비난하는 절대 고독. 그 모습을 지켜보며 할아버지 므두셀라만은 힘써 노아의 방주 건축을 도왔을 것이다. 힘과 용기와 소망을 북돋워 주었을 것이다. 가슴은 노아의 외침을 듣지 않는 세상에 대한 안타까움과 연민으로 가득 차 괴로왔을 것이다.
그 전까지 최장수였던 할아버지 야렛이 향수했던 나이, 962세를 지났지만 므두셀라는 아직도 생존해 있다. 964세 되던 해, 아들 라멕마저 먼저 세상을 떠난다. 아들보다 더 오래 살아가게 된 므두셀라. 그는 유례없는 자신의 장수가 무슨 의미인지를 잘 알고 있다. '그가 죽으면 심판이 온다···' 또 하루의 해가 떠오르는 것을 볼 때마다 그는 죄악으로 가득 찬 인류에 대한 심판을 하루 하루 또 미루고 참으시면서 회개하기를 고대하는 하나님의 자비와 긍휼을 느끼며 눈물을 흘린다.
손자 노아가 600세, 증손자 셈이 98세 되던 해.
'그가 죽으면 세상에 심판이 온다'는 이름으로 평생 불려진 인물, '첫 사람' 아담의 죽음과 아버지 에녹의 변화 승천을 목격한 므두셀라가 마침내 하나님 앞에 마지막 숨을 거둔다.
그리고··· 그 해 2월 17일. 홍수가 찾아와 경건치 못한 자들의 세상이 멸절하고 만다.